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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9.05.29 22:00

노제를 다녀와서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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임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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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침 수업이 끝나고 출발하기 직전인 10시 40분 경까지, 나는 계속해서 고민했다. 가볍게 생각하자면, 그곳에 가는 것은 단지 3-4시간의 소요시간과, 땡볕 아래라는 상황(햇빛 알레르기로, 그 시간 동안 땡볕에 있었던 대가로 노출되었던 모든 곳에 화상을 얻어왔다.)에서 겪어야 하는 체력 저하 정도는 그냥 견디면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. 그러나 나는 집안의 경제 사정에 관련된 생업과 앞으로의 내 앞날을 위한 학업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이른바 소시민인 것이다. 내가 저 곳에 가 있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가게 일을 하시며 버텨야 하셨고, 나의 어머니는 직장에서 무언의 퇴사 협박과 함께 간부에게서 "노조 간부에게 '당신의 투표권을 대리하는 것을 허락해달라'라고 말해달라"라는 부/탁을 받았다. 나는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. 내가 그곳에 가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가게 일을 도와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더 쉬게 만들어 드릴 수 있다.

 

그러나 나는 그곳에 갔다.

 

그곳에 가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. 그저 울고 노래를 부르고, 그의 이름을 불렀을 뿐이었다.

 

하지만 내가 부른 것은 단순히 '그의 이름'이 아니었다. 내가 울면서 외친 그 말은, 그리고 목매어 부른 노래들은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의 표시였다. 이 일은 한 개인을 향한 추모일 뿐으로 그치는 일이 아니다. 물론 나 하나가 외치는 이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. 나는 그저 순진하고 싶다.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내가, 그리고 우리가 분노하고 있고, 우리가 '존재'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고 믿고 싶다. 우리의 목소리가, 우리의 오열이, 우리의 '존재'가 눈에 띄이기를 바랬다.

 

또한 그 자리는 나에게 나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자리이기도 했다. 나는 그동안 정치를 비롯,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했던가.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아무 목소리도 내지 않고, 그저 나 하나만의 개인적 행위들에만 함몰되어 있었던, 나의 죄가 그를 죽였다. 내가 그를 죽였다.

 

노제가 끝나고 영구차를 따라 서울역까지 행진했다. 그 길 중간에 숭례문이 있었다. 그 역시 나의 죄였다. 숭례문이 무방비하게 방치되었던 사실조차 그것이 타 없어지기 전에는 알지도 못하고 있었던 나의 무관심이 국보 1호를 재로 만들었다. 내 잘못이다. 내가 그것에 불을 질렀던 것이다.

 

'자살'이라고 하여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. 그가 무책임하다고. 그러나 그들은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. 그에게 그렇게까지 높은 도덕적 결백을 요구하는 본인들은 얼마나 책임감있고 도덕적인지. 그는 대통령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. 그의 고통과 그의 슬픔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가? 여론 플레이에 놀아나 그를 호도하지 않았던가? (만약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면)물론 그는 한 나라의 전 대통령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.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을 밝히고 자신의 인권을 수호하여 승리했어야 하는 사람이었다. 그러나 우리는 그가 우리와 같은 인간임도 잊어서는 안 된다. 그가 우리를 어떻게 대했었나. 그는 우리들을 '인간'으로 대해주었다. 우리를 위해 싸우던 사람이다. 우리는 우리가 그에게 빚진 바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.

 

자살이냐, 타살이냐의 진실을 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. 그러나 그 진실을 밝히는 것에 힘을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. 그것은 오히려 '억압세력'이 바라는 일이다. 우리가 만약 그것이 타살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'도마뱀이 버리고 달아난 꼬리'를 주워들고 좋아하는 것 이상이 되기 어렵다. 위에서도 말했다시피, 그가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를 죽인 것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무관심이었다. 그의 죽음의 전모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일은 더 이상 세상사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. 그것은 단순한 우리의 의무만이 아니다.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. 그것이 진정한 자유다. 자유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.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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Y모 방송국의 건물에서 노란 꽃비가 내렸다.

 

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던 저 노란 꽃비를 잊지 않을 것이다.

 

노무현 그가 누구였든, 그가 대표했던 상징으로서의 위치는 절대 잊지 않겠다.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야 하는 사회이며, 내 후손들이 살아갈 나라이다. 내 나라다.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다. 내가 눈을 돌리는 그 순간,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진다. 내 나라가 나와 상관없는 이들의 나라가 되어 버리는 순간이다. 죽은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, 우리 모두라는 것을 잊지 말자.

 

결코 잊지 말자, 그의 죽음을.

눈을 크게 뜨자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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